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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님의 마이 페어리 레이디 1권 리뷰입니다. 최근에 피폐한 소설들을 많이 읽어서, 달달하고 읽기 쉬운 소설을 찾다가 구매하게 되었네요. 일단 굉장히 특이한 소설이긴 하네요. 동서양 크로스 물이 흔치는 않으니까요. 초반에는 그 설정이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읽다보니 나름 매력이 있네요. 다만 여주의 겉모습이 어린 아이라고 하니,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데 좀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네요. 뒤엔 어른모습으로 나오겠죠?
1. 작품 소개
당신이 원하면, 뭐든 해도 됩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숙부인 국왕의 기사
로 살아가고 있는 선왕의 사생아 로이드 헤센타인 백작.
어느 날, 학을 탄 소녀 아란이 찾아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로이드는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국왕의 명으로 동대륙의 공주이자
서왕모의 요지선인인 아란과 정략결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아란과 엮일수록 로이드의 주변에는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급기야 로이드는 여우로 변하는데…….
동대륙의 선녀 아란과 서대륙의 기사 로이드의 혼인생활은 무사할 수 있을까?
동서양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
‘마이 페어리 레이디’!
백작님은…… 왜 이렇게 저한테 친절하세요?
당신이 예뻐서요.
2. 차례
#01. 학을 타고 날아온 아가씨
#02. 친하게 지내요
#03. 구름을 타는 법
#04. 초대하지 않은 손님
4. 미리 보기
로이드는 응접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집무실로 안내받았다. 총애받는 조카의 특권이었다. 결재로 바쁜 왕을 힐끗 쳐다본 로이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귀하신 국왕 전…….
됐다.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은 왕이 긴 의자를 가리켰다. 로이드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기대앉았다.
요즘 퍽 얼굴 보기가 힘들구나. 바쁜 일이라도 있는 거냐?
제 일정이 궁금한 건 아니실 테고. 무슨 일입니까?
삐딱한 대답에 서류에서 눈을 든 왕이 그를 쳐다보았다. 쯧쯧 혀를 찬 왕이 귀염성 없는 놈. 하고 힐책했다. 로이드는 대놓고 콧방귀를 뀌었다.
귀여움은 다 늙은 조카가 아니라 손자들에게서 찾으셔야죠.
바쁘지 않으면 됐다. 결혼이나 해라.
왕은 지나가듯 가볍게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로이드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저 같은 사생아를 원하는 가문이 있습니까?
가문이 아니라 황실이다. 호란국에서 혼인동맹을 제안했다.
호란국은 동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이다. 비단과 황금의 나라로 유명하지만, 워낙 폐쇄적이라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비단길로 들어오는 사치품을 통해 짐작하는 정도였다.
호란의 황녀와 혼인하면 서구항을 포함한 네 개의 항구를 개방하겠다고 하더군.
놀라울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만큼 호란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무슨 속셈일까요?
혼기를 놓친 황녀를 시집보내는 게 목적인 것 같더구나.
왕은 여전히 덤덤히 말했다. 농담인 줄 알고 피식 웃은 로이드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진심이다마다. 하워드도 나와 같은 의견이다.
……허?
왕의 서기관인 토머스 하워드는 왕국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또한, 호란국의 문화에 심취해 호란어까지 익힌 전문가였다. 왕이면 몰라도 하워드의 의견까지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물었다.
대체 어떤 여자기에 항구까지 개방하면서 시집보내려는 겁니까?
황제의 대고모라고 하더군. 올해 일흔여덟 살로 한 번도 혼인한 적 없는 처녀란다.
로이드는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열여덟 살이요?
일흔여덟 살.
왕은 뻔뻔한 얼굴로 반복했다. 어이가 없어진 로이드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전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요?
그의 품속에서 파랑새가 지껄였다. 갑자기 끼어든 소녀의 목소리에 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
당황한 로이드가 가슴팍을 눌렀다. 그의 품을 쏙 빠져나온 새가 왕의 앞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순식간에 소녀의 모습으로 변한 아란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혼인이라니, 제 혼인을 왜 하계의 황제가 결정하죠?
로이드는 왕이 비명을 지르거나 기절하거나 사람을 부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왕은 놀란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로이, 이 아가씨는?
저도 모릅니다. 저한테 묻지 마세요.
로이드는 양손을 들며 말했다. 뽀로통한 얼굴로 그를 노려본 아란이 왕에게 답했다.
저는 곤륜산에서 서왕모를 모시는 요지선인 아란입니다. 승선(昇仙)하기 전에는 하계 황제의 딸이었지만, 과거의 일일 뿐이에요. 제 혼인은 왕모님과 어머니께서 결정하실 거예요.
왕의 얼굴이 곤혹으로 물들었다. 로이드는 슬쩍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숙부의 난처함을 모른 척했다.
흠흠, 헛기침을 한 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아가씨가 내 조카와 혼인할 호란국의 황녀란 말이군. 맞소?
황녀였던 건 맞지만, 혼인은 안 할 거예요.
아란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당황한 로이드가 네? 뭐라고요? 하고 되물었다. 왕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이 아가씨가 너랑 결혼할 거라고.
안 한다니까요!
일흔여덟 살이라면서요. 이게 어딜 봐서 일흔여덟 살입니까!
아란과 로이드가 동시에 반발했다. 왕은 벌써 죽이 척척 맞는구나. 하고 껄껄 웃었다.
울상이 된 아란이 로이드에게 말했다.
유유가 거짓말을 했나 봐요. 백작님의 소원만 들어주면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혼인이라니.
유유가 누굽니까?
하계의 황제요.
뜻밖의 대답에 당황한 로이드가 할 말을 잃었다.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던 아란이 몸을 휙 돌렸다.
안 되겠어요. 돌아가서 유유에게 물어봐야겠어요. 뭔가 잘못 전해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잠깐, 아가씨!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녀를 왕이 불러 세웠다. 그는 달래듯이 말을 이었다.
돌아가다니, 어디로 간단 말이지?
호란국으로 가야죠.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거예요.
하지만 호란국으로 가는 배는 없을 텐데.
왕은 도움을 청하듯 로이드를 바라봤다. 어깨를 으쓱한 로이드가 말했다.
배는 필요 없을 겁니다. 제 저택까지 학을 타고 왔거든요.
뭘 타고 왔다고?
왕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당황한 아란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앗, 아니에요. 그 학은 이곳에 와서 만난 거예요. 백작님의 집까지 태워다 주는 대신 미꾸라지를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멍하게 입을 벌린 왕이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아, 그렇군. 내가 대신 그 충성스러운 학에게 미꾸라지를 하사하지.
됐습니다. 제 저택의 정원에 있으니 제가 주죠.
로이드가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두 남자를 번갈아 본 아란이 활짝 웃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감사드려요.
로이드는 슬쩍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보다 뻔뻔한 왕은 아란의 손을 잡고 소파로 이끌었다. 엉겁결에 소파에 앉은 아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푹신한 쿠션이 이상한지 손으로 콕콕 찔러보기도 했다.
왕은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물었다.
그럼 여기까진 뭘 타고 왔지?
외백부님이 등에 태워주셨어요. 원래 용궁에 사시는데 하계로 내려온 저를 걱정해서 찾아오셨거든요.
아란이 수줍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웃으며 고개를 끄떡인 왕이 로이드에게 속삭였다.
용궁이 대체 어디냐?
페어리랜드겠죠.
로이드의 대답에 발끈한 아란이 아니에요. 바닷속에 있는 궁전이라고요. 하고 항의했다. 바닷속이라는 말에 왕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내 왕국에도 그런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세금 거두기 불편한데.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로이드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어깨를 으쓱한 왕이 당연하지. 혼인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하고 대꾸했다. 로이드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왕은 이미 로이드를 혼인시키기로 했다. 주군인 왕이 원한다면 상대가 열두 살 어린애든, 일흔여덟 살의 노파든 혼인해야 한다. 그게 선왕의 사생아인 로이드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도 싫을 때가 있는 법이다. 로이드는 짜증스럽게 물었다.
제가 변태로 소문나면요?
왕의 권한으로 막아주지.
왕이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로이드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란, 당신의 말이 맞았습니다. 갑자기 소원이 생기기도 하는군요.
……네?
아란은 아무 의심 없이 그를 보고 있었다. 그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자 마음이 무거웠다. 로이드는 양심의 가책을 떨치며 입을 열었다.
저와 혼인해주십시오. 그게 제 소원입니다.
아란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리에서 발딱 일어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선계로 돌아가야 해요. 그것 말고 다른 소원을 비세요.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당신에게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로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순식간에 창백해진 아란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로이드는 아무것도 못 본 척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디 저와 혼인해주시겠습니까?
꽃다발도 선물도 없는 청혼이었다. 아니, 협박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소녀의 까만 눈에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저, 저는…….
무어라 말하려던 아란이 몸을 홱 돌려 바깥으로 달려갔다. 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 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다. 아란이 열린 문 사이로 사라지는 순간 밖에서 콰르릉 천둥이 쳤다.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힐끗 쳐다본 로이드가 몸을 일으켰다.
쫓아가지 않고?
왕이 약을 올리듯 느긋하게 물었다. 로이드는 다시 긴 의자에 털썩 기대앉았다.
어차피 갈 곳도 없을 텐데요.
못난 놈.
왕이 대놓고 혀를 찼다. 로이드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따가 데리러 갈 겁니다. 그것보다 아란이 진짜 황녀라고 믿으십니까?
왕은 아란의 말만 듣고 어떤 증명도 없이 황녀라는 것을 인정했다. 로이드의 물음에 왕은 되레 뻔뻔하게 답했다.
너야말로 진짜라고 믿어서 무릎까지 꿇은 거 아니냐.
숙부님.
로이드가 으르렁거리듯 그를 불렀다. 제아무리 왕이라도 조금 전의 일로 놀리면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못마땅하게 혀를 찬 왕이 말했다.
호란국에서 요구한 신랑의 조건이 있다. 첫째, 미혼일 것. 둘째, 혼인 후 다른 여인을 곁에 두지 않을 것. 셋째, 고귀한 핏줄이되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세 번째 조건이 좀 이상하군요.
로이드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끄떡인 왕이 덧붙였다.
호란국의 황제는 적통이 아니라는 의혹이 있다더군. 선황이 서른 명의 아내를 뒀는데 단 하나의 자식밖에 얻지 못했다는 거야. 그 하나도 다른 놈의 씨라고 의심받는 게 당연하지.
서른 명이라니. 엄청난데요.
로이드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왕은 엄청나지. 정부는 더 많았다던데. 하고 부러운 듯 중얼거렸다. 뒤늦게 헛기침을 한 그가 말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대고모이자 적통의 황녀가 나타난 거다.
일흔여덟 살의 처녀가요.
로이드의 빈정거림을 모른 척한 왕이 말을 이었다.
황녀는 선인이라는 신성한 존재로 이상한 힘을 사용한단다. 황제의 백성들은 그녀를 신의 딸이라고 부르며 숭배하고. 그런 여자가 엄한 놈과 혼인해서 애라도 덜컥 낳으면 어떻게 되겠냐.
속이야 어쨌든 열두 살로 보이는 애가 애를 낳을 수 있겠냐만, 황제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황녀를 안전하게 치워버릴 곳을 찾았고, 그게 저였다는 말씀이군요.
……젠장, 난 하워드에게 두 번 듣고 이해했는데.
왕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로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라 구시렁거리던 왕이 말했다.
어쨌든 새로 변하고 학을 타고 다니는 여자가 황녀가 아니라면 그것도 문제겠지.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아란 같은 여자가 하나 더 있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다. 곧바로 납득한 로이드가 물었다.
어떻게 확인하실 생각입니까?
혼례사절단의 배가 2주 뒤 바슨 항에 도착할 거다. 그쪽과 만나게 해주면 되겠지.
왕은 여전히 태평하게 말했다. 로이드는 미심쩍은 얼굴로 왕을 쳐다봤다.
호란국에서 여기까진 빨라도 4개월은 걸릴 텐데요.
황녀는 사절단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뭘.
아란이 가짜일 거라곤 생각도 안 하는 눈치였다. 왕이 조금 미안한 얼굴로 덧붙였다.
로이, 이번 혼인에 너를 오래 묶어두진 않을 거다. 조금만 참아라.
혼인동맹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는 소리였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조금은 입맛이 썼다. 로이드는 가볍게 무릎을 두드렸다.
호란 정벌을 계획 중이십니까?
당연하지. 기회는 왔을 때 붙잡는 거다.
왕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숨을 삼킨 로이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전 그럼 약혼녀를 달래러 가봐야겠군요.
너무 정 주지 마라. 동맹이 파기되면 쓸모없는 인질이 될 테니까.
왕의 경고에 로이드는 무심히 고개를 끄떡였다. 어차피 그가 결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01. 학을 타고 날아온 아가씨
#02. 친하게 지내요
#03. 구름을 타는 법
#04. 초대하지 않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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