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산책

그림책이 주는 매력은 나이가 들어도 줄지 않는다. 폴 쇼워스 글, 알리키 브란덴베르크 그림, 문혜진 옮김의 ‘소리 산책’ 정말 제목이 끝내준다. 가사가 들릴 듯 말 듯 볼륨을 줄이고 멜로디에 들썩거리며 글을 쓴다. 키보드의 딸깍거림, 시계의 째깍거리는 초침소리, 거실에서 들리는 TV소리, 핸드폰 진동소리, 가끔 어느 집 초인종 소리도 작게 들린다. 아빠와 강아지 메이저랑 함께 아무말 없이 생각에 집중하고 소리에 집중하는 소리 산책을 나가는 소녀가 있다.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며 산책하는 동안 그동안 흘려 들었던 많은 소리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익숙한 소리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도 들린다.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집중하고 상상하며 듣는 일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소리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리로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하루종일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든다. 재잘거리며 학교생활을 두서없이 얘기하고, 회사에서 지친 몸을 누이며 연신 하품을 하고, 달그락달그락, 보글보글, 치익~ 표현하기도 어려운 다양한 소리들이 주방에서 들린다.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도 제법 재미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일상의 소음 속에서 지쳐있다. 그래서 간혹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한 시간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완벽한 적막은 있을 수 없다.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 보면 작은 소리들이 하나씩 일어나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한여름 숲 속에서 부는 바람 소리를 좋아한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서로 부딫히면서 사각거리는 소리는 마음에 평안을 준다. 나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좋아한다. 어떤 상황인지 알 필요가 없다. 그저 숨넘어갈 듯 까르르 웃는 소리는 나도 모르게 함께 웃게 한다. 나는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좋아한다. 나무 냄새와 어울려 그 소리는 더욱 근사한 이야기가 된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휴일, 집 근처 공원으로 소리 산책을 가야겠다. 눈을 감고 귀기울이고 마음을 다하여 소리에 집중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폴 쇼워스가 소리 산책을 일깨워준 뒤로 산책이 정말 특별해졌다.봄이 되면 바람의 감촉, 나무의 변화, 새와 곤충의 움직임, 공기의 냄새가 얼마나 황홀해지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산책하기 딱! 소리 산책 은 아빠랑 강아지랑 함께 동네와 공원을 걸으며 경험하는 다채로운 소리의 축제를 그린다. 아빠 구두 소리, 강아지 발톱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딱따구리 소리가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표현되었고, 동네와 공원의 정다운 풍경은 산뜻한 수채화로 되살아났다.말을 줄이고 소리에 집중하며 걷는 건 어떤 것일까?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늘 듣던 소리가 새롭게 들리는 데서 오는 발견의 기쁨! 지루하기만 했던 길이 다양한 소리로 되살아나고, 귀찮기만 했던 걷기가 재밌는 놀이로 변신하는 놀라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을 뿐인데 산책이 이렇게 생동감으로 가득 찰 수 있다니... 꽃피는 봄,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소리 산책을 즐겨 보자.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몸과 마음에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