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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성이 자유롭게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지는 백 년 남짓하다고 한다. 이 책은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근대 여성의 간절한 욕망, 그에 반해 답답했던 현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 결연하게 길을 떠났던 신여성의 삶을 그들이 남긴 기행문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여학생의 기차 통학 이야기, 고향을 방문하는 이야기, 혹은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부터 취재 여행기, 여름 휴가 여행기, 공연 여행기, 유학기와 여행을 목적으로 한 순수 기행문까지 ‘신여성’으로 두루뭉술하게 묶어놓을 수 없을 만치 여행의 목적과 분위기가 다채롭다. 강경애, 노천명, 나혜석, 최승희 등 비교적 알려진 인물들의 글뿐만 아니라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는 여학생의 글이나 무명 작가의 글도 만날 수 있다. 목적은 제각각일지라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반짝이고, 마음 속 꿈과 결심을 다지며 당당하게 길 위에 선 그들의 삶의 면면이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이 놓치고 마는 겨울 여행을 기록하고자 율곡의 자취를 따라간 박화성의 발걸음이 담긴 「해서 기행」에는 “11월의 하순을 홀로 주워 겨울의 명승에 대한 포부와 흉금을 엿보자는 야심”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의사 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여성이었던 허영숙이 인텔리 주부로 살다가 조선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산원을 만들겠다는 이상을 품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계획하면서 동경 유학을 떠나는 이야기, 십여 년 가까이 가난한 유학 생활을 하며 갈고 닦은 재능을 펼쳐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최영숙의 안타까운 삶, 독립운동사와 한국 근대여성사의 큰 인물인 김마리아의 옹골찬 삶 등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춘문예 여성 작가였던 백신애의 「청도 기행」은 예민하고 시니컬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아버지의 강요로 결혼했다가 결국 이혼을 했지만 그녀에게 결혼은 “하늘을 향해 돌멩을 던진 것”이었고, 이혼은 “하늘로 올라갔던 돌멩이가 이제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신여성의 기행문을 그대로 싣고, 해당 글 앞뒤에 간결하게 엮은이의 해설을 덧붙여 신여성이 당면했던 근대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들의 삶에 더욱 주의깊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한 작업은 지금의 우리를 열정적이고 바지런했던 신여성과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나의 게으름과 엄살을, 비뚤어진 욕망과 샛길로 빠진 삶의 목적성 같은, 모나고 못난 부분들을 돌아보게 한다. 뜨끔하고도 가슴 벅찬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 여성들은 개화기까지만 해도 대문 밖으로 나설 때 장옷을 챙겨야 했다. 장옷을 벗고 대낮에도 활보하게 된 때가 1904년 이후이니, 우리 나라 여성의 자유로운 외출사는 겨우 백 년 남짓하다. 당시 금녀의 구역이다시피 한 바깥 세상을 공식적으로 나갈 수 있는 첫 통로는 학교였다.

이 책에 담긴 신여성의 기행기는 대문 밖으로 나서, 통학, 원족(소풍), 수학 여행, 국내 기행, 유학, 세계 여행으로 신여성의 행동 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점층적으로 배치하였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이어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세계 만유를 한 나혜석을 비롯하여, 독립 운동가 김마리아와 백신애, 우리 나라 최초의 스웨덴 유학생 최영숙, 조선의 노라 로 불린 박인덕, 학교 종이 땡땡땡으로 시작하는 동요 학교종 을 만든 김메리 등 근대를 살아간 신여성의 글을 망라하고 있다.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근대 풍경과 인물을 담은 글 한편 한편마다 원문의 이해를 돕는 엮은 이의 평설이 당시 사회, 문화, 지리, 시대상 등을 두루 챙김으로써 신여성의 삶을 폭넓게 만나게 해준다.


머리말 - 세상을 거닐며 말을 건넨 여성들 _ 우미영

대문 밖으로 발걸음을 딛다
기차 통학 - 김복희
삼막사의 가을 - 정애
금강산 탐승기 - 김옥선
조롱 속의 새 - 이경자

여성의 눈에 든 풍경
해서 기행 - 박화성
어촌점묘 - 강경애
용강 온천행 - 김일엽
선경 묘향산 - 노천명
경원선의 여름을 찾아 - CK생
기행 삼천리 - 이주옥

먼 곳에서 보낸 낯선 계절들
동경에 어째 왔던고 - 허영숙
동란의 상해 - 박경희
스웨덴 대학 생활과 인도 인상기 - 최영숙
사랑하는 고국 형님께 - 김마리아
녹색의 꿈 - 김메리

길은 또 다른 길을 열고
청도 기행 - 백신애
소비에트 러시아 행과 C.C.C.P - 나혜석
울 줄 아는 인형의 나라 - 허정숙
태평양 삼만 리 가는 길 - 박인덕
뉴욕에서 고국 자매에게 - 최승희